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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에 관하여

<NEW>, 커피를 내리고 남겨진 찌꺼기와 거름종이, 담뱃불을
붙이고 남겨진 성냥개비, 그 사진, 2010


 인스턴트커피를 오랫동안 즐겨 마시다가 냉장고의 냉동칸에 장기 체류 중이던 원두커피가루를 발견, 이를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수년 째 반복된 일이다. 인스턴트커피, 원두커피, 다시 인스..., 다시 원... 나는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변화를 싫어한다. 당연히 새로운 무엇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주 오랜 습성이다. B초등학교 2학년 때 이사를 했지만 나는 전학을 완강히 거부했다. 이사 간 집은 바로 코앞에 새로운 N초등학교가 담장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음에도 말이다. 그리고 6학년, 신학기에 접어들 즈음 또 이사를 했다. 이젠 버스를 타고 다녀야만 할 정도로 무척 부담스러운 거리였다. 그 집도 바로 앞에는 신설된 J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었다. 당연히 전학해야 했음에도 그리하지 못했다. 등교 때 마다 집 앞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부러웠지만 굳이 먼 거리를 매일 오갔다. 새로움을 맞이하는 설레임보다는 모든 것이 낯선 공간과 선생님과 친구들, 그 모든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을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은 그곳에 나를 새기는 일과 같으니까. 새로운 이들을 만난다는 것은 그들에게 나를 이해시키는 시간과 노력이 뒤따라야 할 테니까. 초등학교를 마칠 무렵 중학교를 배정받았는데 Y중이었다. 그냥 그 교명이 익어서 좋아했지만 역시나 집에서 꽤나 먼 곳이었다. 새로움을 피해온 대가라는 생각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고등학교는 중학교와 같은 울타리안의 Y고에 배정받았다. 그래도 나는 좋았다. 다시 새로움을 피해 6년이라는 변함 없는 생활을 채울 수 있다는 허가증을 받은 거니까.
 어느 날엔가 퇴근하고 집에 왔을 때, 거실과 주방의 가구들이 이리저리 재배치되어 있는 것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짜증의 단계를 뛰어넘어 버럭 화를 내고야 말았던 건 정말 어찌할 수 없는 이놈의 오랜 습속 때문이다. 작업장이자 공부방인 이 골방이 엉망이 되어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해도 어떤 구조적 변화가 발생한다면 신경질적인 반응이 몸 밖으로 표출되곤 했다. 어쩌면 새로움에 대한 강한 경계심이 표피를 덮고 있는 것 같다. 무언가 변화를 감지하는 순간 표피에 돋은 촉수들이 거부반응을 일으키라고 재빨리 신호를 보내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새로움을 좋아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셋방살이를 접고 우리집이 생겼다. 초등학교 교사이시던 어머니가 주위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장만했다고 하셨다. 이제 어른이 되어 그 때의 어머니를 생각하니 5남매 교육비에 늘 빠듯한 살림이었을 당시의 사정이 무섭게 그려진다. 하지만 그 고단한 삶의 일렁임을 나는 알 바가 아니었다. 온가족이 그 새 집으로 구경 갈 때의 설레던 기분을 잊지 못한다. 우와! 새집이다. 기와가 근사한데요. 여기 다락방도 있어요……. 마당도 없고, 채 1m간격도 안되는 통로를 두고 막아선 앞집 담장하며 일자형의 갑갑한 그 집의 구조적 문제점을 찾기에는 새 집, 그것도 우리집에 대한 기쁨이 너무 컸다. 날림공사로 인해 수시로 손을 봐야했던 그 반양옥집이 익숙해질 초등학교 6학년 신학기, 우리 가족은 17평짜리 주공아파트로 또 이사를 했다. 아파트. 가히 혁신이었다. 세상에 이런 편리한 집이 있다니! 무엇보다도 4층에서 내려다 뵈는 놀이터며 거리의 풍경은 앞이 막힌 이전의 집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나는 새 아파트가 좋았다.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도, 나는 내 방이 없었던 것 같다. 마루에서 자거나 어머니 방에서 자거나 형들 방에서 자거나 가끔은 누나들 방에서 잔 것도 같다. 어쩌면 그것은 ‘제자리에서의 여행’. 새로운 것 없는 가운데 새로움을 찾는 연습이 아이었을까. 군 입대를 앞둔 한 해 동안 혼자 공부해보겠답시고 집을 나와 허름한 옥탑방에 기거했던 건 지긋지긋한 그 아파트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군대에 있는 동안 작은 누나가 결혼을 해 출가했다. 돌아와 보니 누나가 쓰던 그 작은 방자형의 공간이 내방이라 했다. 책상과 옷가지를 놓고 두 사람이 눕기에 빠듯한 아주 작은 방. 창문을 열면 손에 잡힐 듯이 솟아오른 히말라야시다의 그 냉랭한 초록이 좋았다. 그 작은 방은 나에게 무엇이었을까. 새로운 세계를 꿈꾸고 새로운 도전을 지속할 응축된 상상공간. 아마도 많은 꿈을 꾸었으리라.
 내가 하는 일이 깊은 통찰과 창의를 요구하는 일이기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언제나 새롭게 사고해야한다는 강박과 욕망이 내면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내 몸을 떠밀고 그리하여야 한다고 지껄인다. 적어도 오늘날의 예.술.가.라면 그리 해야만 하니까. 그것은 여전히 두러운 일이다. 대상의 새로움이 아니라 사고의 새로움은 더군다나 힘겨운 일이고 여전히 벅차다. 그러는 가운데 또 새 해는 오고 있다. 종강을 하니 다가올 새해가 벌써 걱정되고 또 기다려진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무언가 새로운 일이 있기를 기대한다. 오늘 아침의 저 해는 새 해일까? 아뿔사! 져므는 해가 새 해라니. 저어기 저 해가 정녕 새 해란 말인가?

by jhbae | 2010/01/12 01:48 | . . . . . . . . . .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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